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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Talk

글 잘 쓰는 사람이 되세요
#업무글쓰기

엘르코리아 (ELLE KOREA)

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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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 근무가 늘어났다. 사무실에서 수많은 이미지 시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배우 J는 ‘이 컷’과 ‘저 컷’ 같은 ‘캄(Calm)’한 무드로 ‘이런 빈티지한 느낌’의 의자를 사용해 찍으면 어떨까요?”라고 화보 컨셉트를 설명하던 나는 이제 팀장과 1:1 채팅 창을 열어 키보드를 두드린다. 위쪽이 좀 둥근, 너무 둥글기보단 좀 둥그스름한 의자를 사용한 다음….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이미지를 참조….’ 막막함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소리가 타닥, 타닥 느려진다. ‘그날 제가 일이, 아니 다른 일정, 아니 내부 회의 참석차 참석이 불가능….’ 악! 행사 참석 거절 문자도 단번에 답하지 못하다니. 주변 상황도 변했다. 대면 보고만 했다면 긴장하는 탓에 주로 자리에 앉아 글로 업무를 처리해 버리던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친구 A는 소극적인 면이 있다는 평가를 딛고 이제 ‘비딩 히어로’가 돼 비대면 미팅 전면에 나선다(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던 상사의 피드백도 이제 ‘캡처’해 저장해 둘 수 있어 좋다고). 팀의 디렉터 B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온 막내에게 ‘카톡’으로 원인을 물었고, 막내는 일전의 업무 지시 내용을 ‘답장하기’ 기능으로 소환해 ‘이 부분 다시 읽어주세요.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라고 답하기까지. 대면 회의 축소, 미팅 및 티타임 축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시기, 소통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글’이다. 이메일 업무는 장황하고 무거운 대용량 PPT 첨부 파일을 원치 않는다. 화상 미팅을 할 때도 몇 페이지까지 있는지 감도 안 오는 PDF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두세 장의 페이퍼를 필요로 한다. 영상 매체와 첨단 기술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명확함과 간결함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 ‘잘 쓰는 놈’이 살아남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분명 말로 할 때는 완벽했던 것 같은데, 막상 글로 쓰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표정과 목소리, 보디랭귀지가 빠지니 설득을 위한 더 정확한 묘사가 필요하다. 저명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이 세상 모든 일은 결국 ‘글쓰기’로 판가름 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과생’의 지침이라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지만 “글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세계적 물리학자나 생물학자의 공통점은 일반인을 이해시키기 위한 단행본을 출간한다는 것”이라는 말에 이제 고개를 끄덕인다. 내 머릿속에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있다고 한들 상대방을 문자 몇 줄, 메일 한 통으로 설득하지 못하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되는 건 분명 커리어적 ‘재앙’이다! 글을 관통하는 주제가 없고, 문장도 엉망진창이라면 과연 업무를 일관성과 방향성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거라 누가 믿어주겠나. 이미 2004년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는 전 업무에서 파워포인트를 배제하고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내러티브형’ 보고서를 쓸 것을 제안했다. 그래프나 컬러, 형용사나 부사도 쓰지 않고 미리 읽지 않아도 회의실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적확한 문장으로. ‘아마존의 생존 비결은 글’임을 역설한 〈아마존처럼 회의하라〉의 사토 마사유키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잘 요약된 PPT를 읽어도 결국 자의적으로 흐름을 해석한다’고 분석했다. 2016년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 또한 ‘PPT 금지령’을 선포했다. 3개월 후 그는 “보고서 분량이 줄고, 회의 시간이 짧아졌으며, 논의가 핵심에 집중됐다. 연간 5000만 장에 이르던 인쇄용지 사용 수량도 줄었다!”며 효과를 외쳤다. 요점은 업무 글의 핵심은 ‘내러티브’라는 것이다. 좋은 메모의 내러티브 구조는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아이디어가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예민한 감수성의 소비자를 상대하고, 과거처럼 한 가지 영역으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을 포착해야 하는 요즘 업무 환경에서는 논리적 사고가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다각도에서 현상을 보고, 여러 스태프와 의사소통하고, 독자 감수성을 신중히 고려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잡지 에디터(나!)에게는 필수불가결한 기술인 것이다.

내러티브 글쓰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두려움 버리기’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부분에게 글쓰기는 늘 숙제 같은 일이고, 자기소개서와 무수한 서류로 심사를 받아온 우리가 일단 ‘일’이 엮이면 간단한 문자 보고에도 겁먹고 비장하게 타이핑을 시작할 수밖에 없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를 ‘덜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출발점. ‘귀하’ ‘촉구’와 같은 보고서만을 위한 단어, 어려운 한자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부터 버리자. ‘했습니다’ 혹은 ‘했어요’ 중 어떤 어투를 쓸지에 골몰할 필요도 없다. 여러 글쓰기 지침서가 하나같이 가리키는 지침은 ‘업무 글쓰기는 목적 전달이 유일한 목적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동료를 감동시킬 필요도, 빼어난 비유나 참신함도 필요 없다. ‘뭘 더 쓸까’보단 ‘뭘 더 뺄까’가 효과적인 사고의 방향.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쓰기에 앞서 자기 생각이나 의견,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게 갖춰져야 한다. ‘배우 J의 화보를 시크하고 위트 있게 찍고 싶습니다’를 전하고 싶다면 시크하게 찍겠다는 건지, 위트 있게 찍겠다는 건지 방향을 확실히 해야 한다. 차라리 ‘시크함이 주요 키워드지만, 지루하지 않게 재미난 소품을 활용하겠습니다’가 낫지 않을까. 모호한 글로 인한 비효율, 방향성의 변질을 줄일 것. 〈일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씁니다〉의 김선 작가는 ‘독자가 누군지 명확히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업무 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며, 독자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독자의 특성을 면밀하게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목적과 독자가 정리됐다면, 이제 쓸 내용의 토대를 만들자. 여러 업무 글쓰기 전문가들이 꺼내놓은 ‘루틴’을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따라가도 좋다. 내게 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건 〈사이다 공식으로 톡 쏘는 글쓰기 비법〉에 소개된 ‘CIDER’ 공식. 방송작가, 국회의원 비서,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형태의 업무 글쓰기 노하우를 축적해 온 저자는 ‘독자를 선택하고(Choose), 니즈를 발견하고(Identify), 메시지를 결정하고(Decide), 효과적인 표현 방식을 이용해(Express), 글의 목적을 실현하는(Realize)’ 총 다섯 가지 단계를 제안한다. ‘〈엘르〉 2월호 기사로 비즈니스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싣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독자는 팀장이고, 팀장은 이번 호에 왜 이 칼럼을 실어야 하는지, 왜 비대면 글쓰기 비법을 싣기 적합한 때인지 궁금해한다. ‘D’ 단계에서 나는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이에 대한 팁을 제공한다면 독자들의 주체적인 커리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요 설득 메시지로 정리한다. ‘E’ 단계에서는 메신저보다 숨은 참조 기능으로 동료들에게도 공유가 가능한 메일이 낫다고 판단해, 마지막 ‘R’ 단계에서 ‘이 칼럼을 실어야 한다’는 목적이 충족되는지를 점검하면 된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막막할 때 이 흐름대로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멋진 메일 한 통이 뚝딱 완성돼 있을 것이다. 또한 몇 가지 간단한 문장 다듬기 스킬만 기억해도 글은 명확해진다. 우선 애매모호한 말들, 예컨대 ‘~한 부분’ ‘약’ ‘~쯤’ ‘~할 것 같다’는 표현은 배제하자. ‘약간은 시크하면서도 위트가 가미된 컨셉트로 찍어볼 것 같습니다’보다 ‘배우의 시크한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두 컷에는 위트 있는 포즈를 넣겠습니다’가 낫다. 문어체의 강박에서도 벗어날 것. 구어체와 문어체 중 무엇이 효율적인지는 문서 종류나 수신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읽는 이가 더 쉽게 이해해야 한다는 본질만 보자. ‘경쟁 매체 대비 독자 선택권 다양화 니즈 충족’보다 ‘경쟁 매체보다 독자의 선택 폭이 넓습니다’와 같은 구어체가 직관적이지 않나? 문장 구조는 육하원칙만 제대로 따라 해도 술술 풀리고 ‘은/는’과 ‘이/가’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기본 법칙만 지켜도 깔끔한 글이 탄생한다.

습관 형성의 길은 오로지 꾸준한 연습뿐! 매일 1페이지의 보고서를 쓰는 연습을 해보고, 혼자는 어렵다면 ‘클래스101 커리어’ ‘헤이조이스’ 등 커리어 소셜 플랫폼에서 여는 비대면 클래스나 매일 한 문장씩 함께 쓰기에 도전하는 ‘글쓰기 1일 챌린지’ 클럽에 동참해 보는 것도 좋다. 글쓰기는 빛나는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는 한편, 내 생각의 내러티브를 더 견고히 하기도 한다. 업무 보고와 지시에 앞서 글을 정리하다 보면 어떤 목적과 배경에서 실행할 일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어떤 가치가 실현될지 그 정체성이 더욱 촘촘하고 단단해진다. 그러니 마냥 고통을 주는 일이 아니라 든든한 ‘아군’인 것! 글은 ‘나’를 말하고, 내 ‘능력’을 만든다. 물론 하루아침에 글쓰기의 신이 될 순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아주 천천히, 꾸준히 이 ‘무기’를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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