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취미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 정규하
물 위의 산책, 카누잉
카누를 타고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선다. 호수를 덮은 새벽 물안개를 가르고, 아름드리 버드나무들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물 위로. 이미 익숙한 길이지만 넘쳐나는 자연의 생명력에 매번 감탄한다. 물에 부딪는 가볍고 규칙적인 패들 음을 깨며 뛰어오르는 물고기, 그리고 수면을 디딤돌 삼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다양한 야생 조류들. 안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걷힌다. 그리고 드러나는 연녹색 나뭇잎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질 때면 잔잔한 설렘이 가슴 가득 밀려든다. 혼자 나서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카누잉에는 자연과 나, 그리고 동행 사이의 공감 영역을 최고 수준까지 경험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아마도 빈틈이 있으면 스며들어 그 공간을 채우는 물의 속성을 잘 반영하는 레저 활동이기 때문일 터. 품을 떠난 뒤로는 시골의 부모를 찾는 일이 별로 없던 아이가 요즘 자주 와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아빠의 취미 생활을 엿본 후의 일인 듯하다.
© 유성운
위스키 덕질의 최종장, 증류
흔히들 덕질의 시작은 수집이고, 끝은 제조라고 한다. 위스키를 좋아해 자주 마시는 나도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풍미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 위스키의 어떤 성분이 특정한 맛을 내고, 그런 성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직접 위스키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덕분에 요즘 유행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뿐 아니라 쌀과 몰트로도 위스키를 만들어봤으며, 누룩으로 만든 소주를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도 만들어봤다(우리나라 주세법상으로는 위스키로 분류되지 않지만 해외 기준으로는 위스키다). 위스키 증류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호기심과 창작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주는 취미라는 뜻이다. 특히 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해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는 몰트 증류주로 자두 리큐어를 만들어 오크통에 숙성시킨 뒤 다시 그 오크통에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시도까지 해보았다. 자두 향을 극대화한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생전에 그랬던가. ‘취미 생활을 깊이 연구해 특기로 만들라’고. 위스키 제조를 취미가 아닌 특기로 만드는 것이 내 최종 목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홍순일
장애물이 곧 색다른 즐거움이 되는 질주, 오프로드 라이딩
오프로드에서 모터바이크를 타는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운전의 즐거움이다. 오프로드는 맑은 날, 비 오는 날, 비가 온 다음 날, 낙엽이 깔린 날, 추운 날 느껴지는 노면의 질감이 전부 다르다. 맑은 날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언덕을 비가 온 다음 날엔 땀을 뻘뻘 흘리며 기를 써도 통과하지 못할 만큼 변화무쌍하다. 말끔한 아스팔트에선 느낄 수 없는 다채로움이다. 라이더가 구사해야 하는 스킬도 더 다양하다. 스로틀을 당기는 것 외에도 승마를 하는 것처럼 체중을 이용해 모터바이크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매력은 자연이다. 험한 길을 돌파할 때 느끼는 성취감과 보람도 크지만 깊은 산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차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휴대폰조차 잘 터지지 않는 오지에서 캠핑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안개 자욱한 날 산등성이를 돌아 나갈 땐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날씨가 추워지면 안전상의 문제로 주행이 어려운 온로드와 달리 오프로드는 눈이 와도 개의치 않는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다.
© 최진영(국악 연주가)
상상이 현실로 바뀌는 마법, 목공예
사람들은 보통 필요한 게 생기면 포털 창에 검색부터 해본다. 쇼핑몰에서 대략적인 가격과 대안을 살펴보고 구매를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목공이 취미인 사람은 조금 다르다. ‘내가 하나 만들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 물론 작업을 하다 보면 ‘아, 그냥 사서 쓸걸’ 후회가 밀려올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깨 높이 정도 되는 크기의 와인 셀러를 만드는 데 꼬박 2개월하고도 보름이 걸렸다. 사실 디자인 작업에만 한 달을 매달렸다. 이미 존재하는 가구나 설계도면을 참고할 수도 있었지만, 첫 작품인 만큼 온전히 내 힘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머릿속에만 있던 디자인을 스케치로 옮기고 그 스케치가 면과 선을 가진 실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목공이 주는 가장 큰 묘미다. 정규 수업은 주 2회였지만 거의 매일 퇴근 후 목공소에 들러 작업에 몰두했다. 비싼 월넛 자재 탓에 결국 와인 냉장고를 넣을 만한 크기로 만들지 못한 게 아쉽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와인 셀러가 탄생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최근에는 목공이 주는 또 한 가지 재미를 발견했다. 선물하는 즐거움이다. 얼마 전 친구에게 식탁을 만들어 선물했고, 지금은 또 다른 지인을 위해 협탁 제작을 준비 중이다. 여전히 어설픈 구석이 없지 않지만, 어쩌면 그게 핸드메이드의 멋 아닐까?
© 강윤희
주방에서 균 키우기, 천연발효 제빵
나의 취미는 균을 기르는 일이다. 너무 놀라지 마시라. 내가 키우는 균은 천연발효빵을 만들 때 사용되는 천연발효종 ‘르뱅’이니까. 르뱅은 물과 밀가루의 혼합물이지만 공기 중의 미생물과 만나 발효가 되면 빵을 부풀리는 역할을 한다. 이론적으로는 매일 새로운 먹이(물과 밀가루)를 공급하면 영구적으로 키울 수도 있기에 ‘애완 효모’라 불리기도 한다. 물론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르뱅도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 없이는 키울 수 없다. 때때로 식물도 죽이는 내가 그보다 더 까다로운 르뱅을 아무 어려움 없이 잘 키우기만 했을 리 만무한 일. 한 번씩 장인이 만든 훌륭한 천연발효빵을 먹고 있노라면 집에서 빵을 만드는 비합리적인 일 따위 당장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취미를 이어가는 것은 이집트 피라미드 유적에서 얻은 균으로 5000여 년 전의 발효빵을 재현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공간마다 서식하는 균이 다르고 자연히 만들어지는 르뱅의 풍미도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 만들어지는 르뱅은 오직 나만의 ‘강윤희 르뱅’이라는 뜻이니 포기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사람의 머리와 손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복잡하고 섬세한 풍미를 미생물들은 만들어낸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내 자본이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이 자본가’라는 게 요즘 사람들의 시대정신이라던가. 나의 삶이 그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내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나의 균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주 맛있게.
© 최성훈
치열한 전략 공방전, 미식축구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미식축구 같은 스포츠는 피지컬이 탁월해야만 할 수 있다는 것. 비현실적일 정도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NFL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사실 미식축구는 ‘거대한 체스’에 비유될 만큼 치열한 전략 싸움이 기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경기 운영 센스와 전략이 없으면 절대 승리할 수 없다. 현재 ‘서울 바이킹즈’가 구사하는 작전 패턴만 200여 가지다. 프로 팀이 아닌 아마추어 사회인 팀인데도 그렇다. 그리고 상대방이 구사하는 전략을 재빨리 파악한 뒤 적절한 대응책을 지시하는 게 내가 맡은 포지션 쿼터백의 역할이다. 팀원 모두가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만 점수를 딸 수 있기 때문에 매주 전략 회의도 진행하고 있다. 찰나의 순간, 상대 팀의 전략을 간파하고 이에 대응하는 작전으로 공격에 성공하거나 막아냈을 때의 희열은 다른 어느 것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황소처럼 밀고 들어오는 상대 선수의 거친 태클을 서로 막아주며 싹튼 끈끈한 팀워크. 그 역시 내가 벌써 14년째 미식축구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