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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Talk

"NFT와 AI 미술은 과연 예술일까요?" 큐레이터가 직접 답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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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1762~1836)이 1780년대 중반에 남긴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 렌즈가 부착된 암실인 ‘카메라 옵스쿠라’)에 대한 기록은 무척 흥미롭다. 그는 ‘어두운 방 안에서 그림을 바라본 이야기’를 뜻하는 ‘칠실관화설(漆室觀畵設)’이라는 글에서 서울 회현동의 한옥에 카메라 옵스쿠라를 설치하고 관찰한 바를 묘사한다.

“집의 창문을 모두 닫고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모두 막아 실내를 칠흑과 같이 하고, 오직 한 구멍만 남겨 애체(렌즈)를 그 구멍에 끼운다. … 사물의 현상이 거꾸로 박히어 감상하기에 황홀하다. 이제 어떤 사람이 사진(그림)을 만들고자 하되, 털끝만 한 착오도 없이 하려면 이것을 제쳐놓고는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당시 청나라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통해 들여온 최신 광학기술이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조선 최고의 초상화가로 추앙받던 이명기나 풍속화가 김홍도 역시 이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 근거는 사실적 묘사로 감탄을 자아내는 유럽의 르네상스 거장들이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과 동일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쓴 책 〈명화의 비밀〉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미 미술사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던 카메라 옵스쿠라 문제를 대중에게 알린 책을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마냥 ‘천재’인 줄 알았던 위대한 화가들이 광학 장치를 통해 띄워놓은 이미지를 베껴 밑그림을 그렸다니! 천재 화가란 무릇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서 숨 막힐 듯 사실적인 이미지를 눈에 담아 그려냈을 거라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지금도 많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나,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신문물을 접한 조선의 궁중 화원들만 카메라 옵스쿠라를 활용한 건 아니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마술사나 점쟁이에게도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컴컴한 방에 사람들을 몰아넣은 뒤 벽에 뚫린 작은 구멍(렌즈)을 가려두었던 마개나 장막을 걷으면… 짠! 하고 ‘바깥세상’의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들은 때로 벽이 아니라 물을 담은 잔에 이미지를 투사해 놀라움을 배가했고, 사람들은 홀린 듯 지갑을 열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카메라 옵스쿠라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들이 카메라 옵스쿠라로 밑그림을 그렸든 말든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인가. 르네상스 시대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미술의 현실 묘사도 더 사실적으로 변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당대의 최첨단 장비였던 카메라 옵스쿠라는 더 거대한 흐름의 일부였을 뿐이다. 르네상스 거장들이 이 도구를 활용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존재할 테지만 말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이 하늘을 휘영청 가득 채우더라도 누군가는 달 대신 손가락을, 심지어 손마디의 주름만 쳐다보는 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지고 있는 AI와 NFT 등 신기술을 둘러싼 소동에 대해서는… 과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아득해질 때가 많다. 난감함은 대개 평소 미술에 별 고민 없던 자들이 던지는, 거의 항상 잘못된 질문에서 비롯한다. 미술이라고 하면 ‘그림’만 떠올리는, 르네상스 거장들이 카메라 옵스쿠라로 현실 세계를 ‘베낀’ 밑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NFT는 새로운 미술일까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상냥한 미소와 함께 답하고 싶다. “죄송하지만… ERC-721(이더리움 의견 요청 721번)의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신 적이 있나요?” 혹은 “그런데… 어떤 종류의 ‘미술’을 말씀하시는 걸까요?”라고. 202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800억원에 낙찰된 비플의 NFT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를 언급한다면 이번엔 이렇게 묻고 싶다. “혹시 Etherscan NFT에서 해당 거래가 기록된 스마트 콘트랙트를 열면 IPFS상의 저장되어 있는 ‘원본’을 직접 내려받을 수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바보 맹꽁이들은 대체로 미술을 매우 평면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점점 더 비물질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그것을 위해 엄청난 물질적인 기반시설이 필요한) 인류의 움직임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는 편이다. 그러니 국제적 미술 잡지 〈Art Review〉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영향력 ‘Power 100’ 명단에서 사상 최초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 1등을 차지한 것이 ERC-721이었던 것도 금시초문일 테다. 미술이나 예술과 연계된 NFT는 아주 많은 사용 사례(use case)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 저작권 등 법적인 문제는 여전히 회색 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

여기서 잠깐. 글을 읽는 당신에게 위에 언급된 질문들이나 정보가 생소하다고 해서 당신이 바보 맹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NFT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을 넘어 창작과 판매, 구매 등을 통해 더 진지하게 관여하고 싶은데도 이런 이야기가 낯설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바보야, 손가락 말고 달을 봐!

AI에 대해서도 호들갑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지역 축제에서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생성한 작품이 미술 부문 1등을 차지해 화제가 되었다. 역시나 이 소식에 대해서도 “AI가 곧 미술가를 대체할 거야!”를 외치며 공포에 휩싸인 바보 맹꽁이들이 있다. 그들에겐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길 권하며, 이렇게 묻고 싶다. “그래서… AI가 대체할 미술가는 어떤 미술을 하는 사람일까요?”

아마도 AI는 매우 높은 확률로 당신을(미술가를) 대체하긴 할 거다. 만약 당신이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업을 끝없이 학습해 조합해낼 수 있는 AI가 뽑아내는 결과물과 별다를 바 없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리 머지않은 시점에 AI가 당신을 대체할 날이 도래할 것이다. 당신이 ‘대체 불가능하지 않은(non-non-fungible)’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하거나 좀 더 대체 불가능한 창작을 위한 고민에 힘을 쏟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혹은 손가락 대신 달을 볼 수도 있다. 동료 큐레이터와 함께 기획해 오는 11월 초 오픈하는 전시 〈네버 얼론〉의 한 참여 작가는 이미지 생성 AI에 ‘비디오 아트 설치 금속 구조물’을 입력했고, 그렇게 얻은 이미지를 고스란히 설치 구조물로 옮겼다. 여기에 세 개의 OLED 화면을 매달아 스스로 만든 영상 작업과 더불어 이를 학습해 흉내 내는 AI 알고리즘이 제 학습 결과물을 출력하는 영상을 함께 전시하기로 했다. AI가 작가를 대체했지만, 작가는 자신을 대체한 AI를 가지고 놀았다. 바보들아, 손가락 말고 달을 봐!

박재용은 작가이자 큐레이터, 통번역가, 장서광이다. 900일 째 매일 명상과 달리기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동료들과 함께 ‘뉴 오피스’를 운영하며, 아트북 서재에 ‘서울 리딩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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